세월’처럼 빠른 건 없구나! 달력을 보니 2044년 4월이야! 옛날 중국의 시인 유정지(劉庭芝)의 노래대로, “해마다 피는 꽃은 비슷하건만 사람은 해마다 달라지누나.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김동길 교수] 엄마는 안산의 단원고를 마치고 서울 안암동에 있는 역사 깊은 대학의 법과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 연수원을 마치고 변호사가 되어 장안의 유명한 법률사무소에 취직, 거기서 너의 아빠를 만나서 깊은 사랑에 빠졌어. 조촐한 결혼식을 끝내고 청담동의 스물 두 평짜리 좁은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맏딸인 너를 낳았다.

서영아, 너는 올 봄에 고2가 되었지! 동급생들과 어울려 담임선생님 모시고 산이나 들로 수풍이라도 가겠지. 또는 기차나 배를 타고 좀 먼 곳으로 수학여행을 떠날 수도 있겠지. 38선도 없고 휴전선도 사라진 우리들의 조국 대한민국이 되었으니, 경의선 타고 평양에 들렸다 신의주에 다녀올 수도 있겠지. 2014년 봄,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그런 비극은 다시는 없을 테니까. 안심하고 다녀와도 된다.

서영아, 너는 다만 꿈속의 딸일 뿐, 내 삶은 그렇게 순탄하지 못했다. 나는 2014년 4월 16일 아침 <세월>타고 하늘나라로 곧바로 왔다. 여기가 ‘에덴동산’이라고 하는데, 온갖 꽃이 만발했고, 과일나무마다 열매가 주렁주렁, 맑은 시냇물이 돌돌 흐르고 있다. 내가 고1되던 해 봄에 세상 떠난 어버님은 나무 그늘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어. 어버님은 나를 얼싸안고 내 눈의 눈물을 닦아 주셨어.

내 귀에 노래 소리가 들린다.

찬란한 주의 빛 있으니

거기는 어두움 없도다

우리들 거기서 만날 때

기쁜 낯 서로가 대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