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원기 국회의장이 한 강연회에서 ‘이젠 개헌논의를 할 때가 되었다’고 공개적으로 운을 띄웠습니다. 그러면서 개헌이 필요한 이유로 몇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의 진전, 탈냉전과 세계화, 남북관계의 변화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개헌을 이야기하는 진짜 속내는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2월, 취임 3주년을 맞은 노 대통령은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산행에서 “임기 중에 선거가 너무 많아 국정운영에 애로가 많다”며 임기와 선거 시기와 관한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이를 두고 임기와 선거 시기와 관련된 내용은 헌법개정사안인 만큼 노 대통령이 개헌을 암시했다는 관측과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보도될 것을 예측한 듯 노 대통령은 “개헌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범위를 떠났다”는 말로 선을 긋기는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임기 3년 만에 치러지는 선거는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평가일 수밖에 없다”며 중간평가로서의 지방선거의 의미를 애써 평가 잘했습니다.
결국 종합해 보면, 임기 중간에 있는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은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는데 방해가 되니, 임기를 조정하고 선거 시기를 일치시켰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발언들과 이번에 개헌 관련 발언을 한 분이 노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이라고 일컬어지는 김원기 의장인 점을 종합해 보면 개헌을 바라는 대통령과 여당 측의 바램은 상당히 절실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연 대통령 임기 중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국정에 방해가 되는 것일까요? 중간선거로서 의미 없는 이미지 선거일까요? 대통령제를 시행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국민이나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흔히들 미국을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나라의 모범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떻게 운영하고 있을까요?
가장 최근에 치러진 미국 대선은 2004년 11월에 있었습니다. 그 때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 의원의 1/3을 같이 뽑았습니다. 하원의원 임기는 2년이고, 상원의원 임기는 6년인데 그 중 1/3은 2년마다 새로 뽑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통령 임기 시작 후 2년 뒤에는 언제나 하원의원 전체와 상원의원 1/3을 뽑는 중간선거 (Off-Year Election)를 실시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중간 평가를 하고, 2년 뒤에 있을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미리 점치기도 합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주에서는 대통령의 임기 시작 후 2년이 지난 시점에 주지사를 뽑는 선거를 실시합니다. 결국 미국은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이 지나는 시점에 하원의원, 상원의원, 주지사를 새로 뽑는 중간 선거를 통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중간 평가를 받도록 제도화 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과 정부는 중간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국민을 더 잘 받들고, 더 나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임기 중에 선거가 많아서 국정운영이 곤란하다느니, 선거 때문에 낭비되는 돈이 너무 많다느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가 꼭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면, 한 번 뽑은 대통령이 2-3년간 국정을 농단하고 죽을 쑤어도 국민들은 손만 놓고 다음 대선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입니까?
중간 평가를 통해 그 때까지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해 국민들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밝히고, 잘못된 점을 지적함으로써 남은 임기동안 제대로 국정을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선거에 들어가는 비용도 국민의 혈세인 만큼 아깝기는 하지만, 국정운영을 잘못하는 대통령을 그대로 두어서 나라가 엉망이 되는 것보다는 훨씬 값싸게 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오로지 민생에 전념할 때입니다. 진실에 기초하지 않은 정략적인 개헌 논의는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개헌 논할 때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