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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기사등록 일시 : 2020-11-25 22:48:53   프린터

부제목 : 헤겔 변증법과 비교 논의

81년 성철스님 宗正 취임 法語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요즈음도 인구에 회자되는 이 말은 1981년 1월 대한불교 조계종 제6대 종정(宗正)에 추대된 성철(性澈, 93년 入寂)스님이 해인사에서 사부중(四部衆)에게 내린 종정 취임 법어(法語)이다.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이 외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시회대중(示會大衆)은 알겠느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산 물물’이란 말의 배경은 불교라는 종교적 관점에서 찾아야 한다.

 

불교의 존재론적 사유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華嚴)와 만법유식(萬法唯識-唯識)에 있다. 일체유심조란 우주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은 마음이 짓는다(作)는 뜻이다. 마음이 생겨나면 모든 존재가 생겨나고(心生則種種法生) 마음이 멸하면 모든 존재 또한 멸한다(心滅則種種法滅)는 원효(元曉)대사의 오도송(悟道頌)이 이와 같은 화엄 도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

 

만법유식은 모든 존재자(存在者)는 내 마음이 그것을 인식하는 한(限)에서만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나의 의식주관이 건립한 세계이다. 서양철학에서의 관념론(觀念論)과 매우 유사하다. 일체유심조나 만법유식은 근본적으로 우리들의 마음과 의식을 떠난 일체(一切)의 것들은 존재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 자연 만물 등 모든 것의 주인은 마음 즉 심(心)이다.

 

성철스님의 법어에서 ‘보이는 것은 관음이요 들리는 것은 묘음’이라 한 것 역시 마음의 문제이다. 눈과 귀가 아닌 마음이 관음을 보고 묘음을 듣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 인식에 있어서 눈이나 귀라고 하는 감각지(感覺知)를 떠난 유심(唯心)의 차원이다. 그렇다면 그 마지막의 ‘산산 물물’ 역시도 우리들의 이와 같은 감각지를 초월한 경지에서의 이야기다.

 

선(禪)에 있어서의 몰록 깨우침인 돈오(頓悟)도 아무 의식(意識)도 없는 가운데서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역시 오랜 <의식의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참선(參禪) 자체가 바로 의식의 경험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간화선(看話禪)에서 화두(話頭)를 드는 것은 그 화두 자체가 바로 <의식의 경험>에 필요한 도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법문은 스님께서 오랜 선 수행을 통하여 전미개오, 오도(悟道)한 마음의 경지를 설하신 것이다. 여기서 산과 물은 내 마음이요, 내 마음은 산과 물이다. 그러니까 자연과 마음이 통일된 일여(一如)의 경지다. 그리고 ‘산산 물물’은 내 마음이고 바로 또 네 마음이기도 하다.

 

산산 물물’의 변증법적 含意

 

중국의 송(宋)대 선승(禪僧) 청원유신(靑源有信)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노승이 30년 전 아직 참선 공부에 들지 않았을 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었다.
老僧 三十年前 未參禪時
 見山是山 見水是水

(그러나) 나중에 이르러 여러 선지식을 친히 뵙고
 가르침을 받은 후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乃至後來 親見知識 有個入處
 見山不是山 見水不是水

(허나 진정 깨쳐) 마음 쉴곳 얻은 오늘에 이르러
 다시 그 예전의 산을 보니
 산은 단지 산이요
 물은 단지 물이더라.
而今 得居休歇處
 依前 見山只是山
 見水只是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설법은 성철스님에 앞서서 위와 같이 청원유신이 먼저 남겼다. 그런데 앞서 말한 그 의식의 경험적 변화로서의 과정을 보면, 19세기 후반 독일 철학자 헤겔(Georg Wilhelm Fridrich Hegel, 1770-1831)이 내놓은 정(正-肯定-定立), 반(反-否定-反定立), 합(合-否定의 否定-綜合)이라는 삼단계의 변증법(辨證法-Dialectic Method) 이론(理論)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청원유신의 이와 같은 선(禪) 체험은 참선에서의 ‘깨우침’의 과정이 변증법적 논리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추정해 보게도 한다.

 

헤겔은 유럽에 있어서 산업혁명, 프랑스 혁명, 미국의 독립, 나폴레옹의 집권과 몰락 등이 일어난 대변혁기를 경험하며 철학을 한 인물이다. 그의 주저는 <정신현상학 Phanomologie des Geistes>으로 이는 그가 교수로 재직하던 예나대학을 나폴레옹 군대가 점령하던 1806년 10월 13일에 탈고하고, 이듬해 1807년 4월 발베르크에서 초간(初刊)한 것이다.

 

<정신현상학>은 헤겔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의식(意識)의 경험의 학(學)’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은 정지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의 경험을 통해 진리를 파악해 나아간다.

 

의식의 경험이란 이런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의식은 감각적 지식에서 출발하여 자기동일(自己同一)적인 사물(事物)을 인식(認識)하는 지각(知覺), 그리고 법칙 안에서 관계를 인식(認識)하는 오성(悟性)으로 지양(止揚-Aufheben)되어 나아간다. 이러한 과정들은 우리들의 사물(정신적 대상도 포함하여)을 인식하는 의식이 그 사물에 대해 긍정을 통한 정립(定立-These-어떤 확신이나 주장을 세움)을 이루면, 의식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그 속에서 어떤 모순 대립을 겪어 앞서의 긍정을 부정하는 반정립(反定立-Antithese)을 이룬다. 그러나 의식은 역시 여기서도 멈추지 않고 다시 그 ‘부정의 반정립’을 또 부정하게 된다. 그래서 ‘부정의 부정’으로서의 종합(綜合-Synthese)을 이룬다. 이 종합은 정립과 반정립을 거쳐 모순과 대립이 통일되는 새로운 단계이다.

 

그러나 헤겔의 정신변증법은 이 3단계의 변증논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앞서 셋째 단계인 종합은 다시 긍정으로서의 정립이 되어 정-반-합의 변증법적 의식운동을 의식(意識)의 최고 단계인 절대지(絶對知-절대정신)에 이르기까지 지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앞서 청원유신(靑源有信)의 경우, 선적 수행을 모르던 시기에 산을 보면 산이고 물을 보면 분명 물이었다. 이것은 헤겔 변증법에 따르면 긍정(正-These-定立)으로 감각적(감성적) 지식에 속하는 지(知)이다. 아마도 이런 것이 범부의 지적 경계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 단계 참선(參禪)에 들어 많은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선(禪) 도리를 배우고 실제로 자기 자신이 실참(實參)하여 오래도록 수행한 결과, 그 때의 산과 물에 대한 느낌은 선을 하기 전과 다르게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변증법(辨證法)적으로 보면 이는 확실히 선을 수행하기 이전의 산과 물에 대한 긍정적 정립을 부정(否定)하고 있는 것이다. 즉 정(正)에서 이를 부정 하는 반(反)으로 나아 간 것이다. ‘산산 물물’에 대한 감성지, 유식(唯識)으로 말하면 전5식을 부정하고 의식이 한발 앞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청원유신에서 마지막 제3단계는 다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의 ‘산산 물물’은 맨 처음 제1단계인 긍정(定立)으로서의 ‘산산 물물’이 아니고, 두 번째인 부정(반정립)으로서의 ‘산산 물물’도 아니다.

 

앞서 1과 2의 긍정과 부정의 모순 대립을 지양(止揚), 통일하여 새롭게 이루어진 의식이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산산 물물’과 의식 즉 ‘마음’은 불이(不二)적 관계이다. 불교에서 ‘깨우침’이란 우주와 자연, 사물과 내가 둘이 아닌 일여(一如)의 경지를 이루는 것이 아니겠는가!

렇다면 성철스님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산산 물물’은 나와 떨어져 있는 2분법적 존재가 아니라 ‘내가 산이요 산이 나이며 내가 물이요 물이 나인 경지’인 것이다. 물아(物我)가 합일(合一)된 하나의 의식상태, 그 것이다.

 

이러한 정신 경지는 헤겔로 말하면, 주관과 객관을 동일화하는 절대지(絶對精神-Absolute Geist)이고, 불교로 말하면 우주만유(宇宙萬有)의 진실재(眞實在)로서 평등무애(平等无涯)한 진여(眞如), 반야지(般若知)라 할 것이다.

 

이와같이 본다면 <의식의 경험>으로서의 변증법적 사유와 논리는 19세기 헤겔에 앞서 이미 8-11세기 동양의 선불교(禪佛敎)에서 완성된 것이 아닌가 ! 그러나 그것이 이론화 되기까지는 서양 헤겔의 <정신 변증법>을 기다려야 했다. 송재운(동국대 명예교수)

이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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