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군의 아침’이라는 군가가 있다. 애창되는 군가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 예스런 가사에 장중한 멜로디가 인상적인 곡인데 시작이 이러하다.동이 트는 새벽꿈에 고향을 본 후 외투 입고 투구 쓰면 맘이 새로워.”
자연스럽게 한 병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침 일찍 일어나 힐끗 하늘을 보고 군화의 끈을 맨 후 막사를 나서는, 행군을 준비하는 그 병사의 아침은 투구를 씀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굳이 철모나 군모라 부르지 않고 투구라고 적어넣은 작사자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는 전사라는 아주 오래된 직업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오랫동안 해온 일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것은 행군이다. 유사 이래 전사들은 먼 곳으로 떠나 적과 맞서 싸웠다.
행군에 앞서 전사들은 무장을 갖추었다. 잘 손질된 무기를 들고 심장을 보호하는 장구들을 마련하고 그 모든 준비가 끝나면 투구를 눌러썼다. 무장을 해제할 때는 거꾸로 가장 먼저 투구를 벗었다. 그러면 그들은 차갑고 냉혹한 전사에서 눈썹과 코, 입술과 표정을 가진 인간이 된다.
기원전 460년경에 제작된 이 코린트 양식의 투구는 헤파이토스의 후예들이 단 한 장의 청동판을 세심하게 두드려 정교하고 우아하게 제작하였다고 한다.
▲ 김영하 소설가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동부의 한 전사가 썼던 이 투구는 전사의 두개골을 적의 검과 화살로부터 지켜냈다. 승리의 기념으로 제우스의 신전에 바쳐지고 어찌어찌 그리스, 로마 문명이 가장 늦게 도달한 저 영국의 박물관까지 흘러가서 또 이렇게 ‘행군의 아침 이 애송되는 지구 반대편의 반도까지 날아왔다.
함께 도착한 다른 신성하고 고상한 유물들과 달리 이 투구는 분명 누군가의 손때와 피와 체액, 먼지로 오래 더럽혀진 것이다. 수천 년을 살아남은 이 청동 투구 앞에서 전쟁과 살육의 그 유구함을 다시 생각한다.
대영박물관 보물 코린트 투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