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부 장관 (장하진 사진)은 29일 경계에서 말한다 (talking at the edge) 이 책은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두 페미니스트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엮어서 만든 책이다.
조한혜정 교수는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로 또하나의 문화 청소년센터인 하자센터’에서 활동하면서 우리사회의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이론가이자 활동가다. 우에노 치즈코 교수는 도쿄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학 연구자이면서 여성학 연구자다. 그의 대표적 저서인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한국에도 번역돼 출간되었으며, 나도 충남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이 책을 읽도록 했다.
이 책은 딱딱한 사회학 이론서도, 여성학 이론서도 아니다. 두 학자는 지금까지 각자 자신의 영역 여성, 청소년, 노인, 문화, 교육, 복지 등-에서 이루어낸 연구성과를 들고 ‘편지’라는 형식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나’를 주어로 해서 글을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개인의 생각과 삶이 묻어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 두 여성학자의 학문적 역정과 개인적 삶을 함께 엿볼 수 있어 글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또한 서로의 생각과 사유가 상대의 편지를 받고 진전되는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나에게도 이런 글쓰기 파트너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닫힌 사고의 경계 과감하게 넘나들며
일본과 한국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의 경계를 뛰어넘어 두 여성학자가 주고받는 주제는 ‘탈근대성 차이의 정치학 돌봄과 보살핌의 유대’다. 한국과 일본의 경계를 뛰어넘고, 어른과 아이, 여자와 남자, 중심과 주변,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우리가 어떻게 다양한 접속을 시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조한혜정 교수는 세대를 뛰어넘어 청소년과의 새로운 만남, 접속을 시도한 사람이다. 청소년 직업체험의 장(場)인 ‘하자센터’를 통해 ‘작은 학교 모델’을 만들어내는 실험적인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이 세대 간의 낯선, 이질적 만남이 예기치 않은 ‘남다른 공간’의 탄생을 가져왔고, 이 실험을 통해 우리사회가 고민하는 청소년과 교육문제의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에노 치즈코 교수는 일본과 한국이라는 국가, 민족의 경계를 뛰어넘어 일본에서 한국 국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여성들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고 있다. 비영어권 사람, 유학을 갔다 오지 않는 국내파 학자라는 주변부의 위치가 오히려 비교우위를 가지며, 일본에 있는 조선적(朝鮮籍)을 가진 여성,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접속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그 경계가 예전처럼 분명하지 않다. 세계화, 정보화의 진전은 지리적 공간과 국가 간의 경계를 의미 없게 만들고 있다. 여성과 남성의 역할분담이나 경계도 큰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과 사고는 그 경계와 울타리에 여전히 갇혀 있다. 두 학자의 대화는 바로 이러한 막히고 닫힌 사고로부터 그 경계를 넘나들면서 우리로 하여금 자유로운 사유를 가능케 해준다.
양육의 커뮤니티로 지속가능한 미래 열고
우리도 그 경계에서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리사회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보면 어떨까? 우에노 치즈코 교수는 복지 분야에서 보살핌(care)이라고 하는 유대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를 꿈꾼다. 꼭 혈연이 아니어도 좋고, 가족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좋은 ‘보살핌의 유대’를 만들어내는 것! 쇠퇴해가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늙어가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들어내고, 상호의존이 창피한 일이 아니고 위안과 즐거움이 되는 사람과 사람의 네크워크가 있는 것.
그가 말하는 보살핌의 유대는 바로 이런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2000년 개호보험이 시행되어,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보살핌의 서비스를 사회가 분담하고 있다.
조한혜정 교수는 문화와 교육 분야에서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작은 지역사회를 꿈꾼다. 양육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 이 마을에는 아주 좋은 공동 육아방과 작은 학교들이 있으며, 수시로 주민회의와 축제가 벌어지는 광장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작은 학교를 중심으로 생활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여자와 남자, 아이와 어른, 국민과 시민, 경제와 문화, 근대와 탈근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보살핌’의 가치를 아는 성찰적 주민들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간다.
최근 우리 사회에 고령화와 저출산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기존의 일과 가족, 임금노동과 보살핌, 여성과 남성 등 분리적 사회시스템을 뛰어넘는 새로운 틀짜기를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인 것 같다. 우에노 치즈코 교수와 조한혜정 교수의 <경계에서 말한다>는 자녀 양육과 교육, 장애인 및 노인의 수발과 봉양 등 보살핌의 유대가 더 이상 개별 가족만으로는 충족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를 사회에서 재구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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