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은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이공계 대학 졸업생 비율도 선진국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그러나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질적 경쟁력은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기업의 불만은 점차 높아져 가고 있다. 대학은 대학대로 학생들이 정상적인 교육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이라고 걱정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기초교육을 다시 해야 한다고들 한다. 일리가 있다.
대학에서 강의했을 때의 경험이다. 1학년 강의실에 들어가면 먼저 어떤 과학과목을 고등학교 때 이수를 했는지 조사한다. 그런 다음 고등학교 과학 과목의 기초적인 부분을 몇 시간 동안 간략하게 정성을 다하여 가르치고 나서 대학전공과목을 강의하곤 했다. 책 한두 권 읽으면 될 정도의 교양 수준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는 전공 공부에 많은 투자를 하라고 자주 설득했다. 학생에 따라서는 수강신청한 내용을 나에게 보여주면 조언을 해주겠다고 자청한 적도 있다. 운동선수가 실력과 승부로 자신의 몸값을 높이듯이 대학과정에서 공부한 내용으로 졸업 때 자신의 몸값이 결정된다는 위협 아닌 위협도 해보았다.
그러나 이런 식의 개인적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선진국에 비해 높은 교수 1인당 학생수, 대학생 1인당 낮은 교육비, 세계 수준의 대학육성이 아직 안된 상황 등 대학의 교육 및 연구기반이 취약하다는 구조적인 문제 또한 있기에, 대학 탓만 할 수도 없다. 정부재정이나 민간부문에서 대학교육에 쓸 수 있는 투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대학정원과 대학진학희망자수도 경제의 압축성장과정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비대해졌다.
대학에 거는 기대 삼박자
흔히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한다. 상아탑은 인간의 이성을 이끌어갈 사회적 가치관과 담론을 만들어내고, 과학분야에서는 순수 기초연구와 지적 자산을 생산하는 지성의 최고 수준을 지칭하는 말이다. 대학은 현재 기초과학 연구와 인력양성이라는 전통적인 상아탑의 기능에 덧붙여 산업발전의 주요한 축 역할도 해 줄 것을 요구받고 있다.
원천기술은 장기적으로 꾸준히 기초연구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따라서 기초과학의 육성은 국가적 의무다. 이러한 점에서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국가연구개발사업과 인력양성 사업을 통해 논문의 질적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는 최근 소식은 매우 고무적이다.
또한 기초과학 육성과 양대 축을 이루어온 인력양성은, 대학의 고객이 학생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모방형 경제성장에서 혁신주도형 경제성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국가적 목표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과학과 산업부문에서 과학기술 지식을 기반으로 사회 각 부분의 혁신을 주도하는 이른바 ‘창조적’ 이공계 인재는 국가기술혁신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요소다. 창조적 인력은 첨단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창출하는 핵심 연구인력부터 중소기업, 벤처 등 생산현장의 산업기술 인재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런 전통적 대학의 기능에 덧붙여, 우리나라 대학들도 산업계 지원기능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 즉 아카데믹 캐피탈리즘 (academic capitalism)을 새롭게 요구받고 있다. 우리 대학은 그 동안 산업체 수요를 반영할 수 있는 특성화된 교육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못해 산업기술 인력과 기술수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선진국 대학에서는 경상적 재정과 함께 기술발전에 따라 점차 규모가 늘어나는 연구비를 확보하기 위해 대학간 경쟁원리가 작동하기 시작, 1980년대를 전후해 아카데믹 캐피탈리즘이 도입되었다. 이후 산학협력, 스핀오프 기업 설립을 통한 수익창출, 테크노파크 조성 등이 대학의 주요 활동이 되면서 산업지원기능이 강화되고 국가 산업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대학이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아카데믹 캐피탈리즘의 개념이 국내에 도입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그러나 2003년이 돼서야 대학별 산ㆍ학 협력단이 설치되는 등 제도적인 기반이 겨우 마련된 정도이다. 그 동안 정부지원에 의해 성장기반을 갖추긴 했지만 선진국의 기업가적 대학이 갖는 산업-대학-기업간 유기적인 연계발전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특히 산업과 사회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핵심연구인력과 산업기술인재의 양적, 질적 분야별 수급 불일치는 ‘구직난, 구인난’을 동시에 초래하면서 기업경쟁력, 나아가 국가경쟁력 확보에 적신호로 작용하고 있다.
국가의 미래는 결국 사람의 경쟁력이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대학의 교과과정, 교수의 평가지표가 획일화되고, 대학이 서열화되면서 마치 대학입학이 인생의 성패를 죄우하는 것처럼 인식되기까지 하면서 공교육이 부실해지고, 국가의 인력활용에 왜곡현상까지 생겨 대학교육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을 받게 되었다.
창조적 이공계 인재를 위한 대학혁신
참여정부는 이공계 대학 스스로 ‘창조적 이공계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운영에서 제도까지 총체적인 혁신을 집중 추구할 계획이다. 다양화, 특성화, 자율화를 통해 대학과 인재가 다양한 국가적 수요와 지역적 역량과 발전에 적합하도록 성장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우선, 이공계 대학의 운영혁신을 위해 대학 구조개혁, 특성화 유도, 대학간ㆍ대학내 경쟁촉진, 교육과정 혁신 등 소프트웨어적 혁신을 유도할 것이다.
또한 세계 수준의 핵심 연구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국가 연구개발사업 등을 통해 각각의 대학이 경쟁력을 보유한 특성화된 분야에 집중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이러한 연구중심대학에 연구비가 늘어나면 경쟁력이 높아지고 우수한 학생들도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핵심인력이 양성될 것이다.
아울러 산학연계를 통한 수요지향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산학 연계 촉진을 위한 기반조성, 산학협력 유형별 인력양성 체계 확립, 이공계 인력의 재교육 및 계속교육 강화, 산학 연계에 의한 개발기술 사업화 추진 등 산업계와 대학의 인력수급 시스템을 전략ㆍ유형화하여 국가차원에서 창의적 인재양성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보다는 경쟁시스템 등을 통해 대학이 자발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주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SCI 등 대학교수의 논문발표 실적과 함께 산학협력 실적 등이 교수 평가에 골고루 반영될 수 있는 평가제도가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노무현 대통령도 "우리 대학이 경쟁시대를 맞아 개혁되고 선진화돼야 한다. 대학도 산업이 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대학은 상아탑에 안주하지 말고 산학 연계를 통한 수요 지향적 인력양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공계 대학 개혁의 핵심 내용이 돼야 한다.
대학에 대한 걱정
